미국의 "Sweet Maria's"에서 2016년 1월 13일에 작성한 글을 번역한 자료입니다누군가에는 아주 흥미로울수 있는 자료입니다!혹시라도 인용하게 된다면 꼭! 반드시! 출처 (Sweet Maria's)를 작성하고 인용하세요!! Origin of Gesha Coffee 예전의 나는 게이샤(Gesha) 커피가 처음 발견되던 현장에 내가 "있었다"는 헛된 착각을 하곤 했다. 어디였냐고? 2002년 파나마였다. 아니, 2003년이었나? 게이샤 품종이 단일 로트(lot)로 테이스팅 패널 앞에 오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다.하지만 당시의 나는 커피 재배지를 많이 가본 상태가 아니었다. 그저 눈앞의 모든 상황을 받아들이려 애쓰고 있었을 뿐이다. 아마 과일 향이 나는 과발효된 커피가 나왔더라도 나는 그 차이를 구별하지 못했을 것이다. 애초에 내가 무언가를 '발견'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수많은 사람들과 함께 맛을 보았을 뿐이다.많은 사람들이 "야, 이거 좀 다른데"라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우리는 모두 그 커피에서 꽃 향기가 난다는 점에 동의했다. 그리고 그 커피가 우승을 차지했다. Panama Coffee Cupping Competition 2003 현재 내 관점에서 볼 때, 하나의 맛 현상으로서의 게이샤(Gesha)는 그리 중요하지 않아 보인다. 하지만 50년 전 에티오피아에서 일어난 일, 그리고 아이러니한 연쇄 작용을 거쳐 게이샤 커피가 "발견"되는 이 순간으로 이어진 그 과정이 나에게는 훨씬 더 흥미롭게 다가온다. 그 이야기는 잠시 후에 하겠다.게이샤가 스페셜티 커피 바이어들의 주목을 받게 된 계기는 피츠(Peets)가 파나마에 있는 피터슨(Peterson) 가문의 에스메랄다(Esmeralda) 농장에서 커피를 구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 추측으로는 카투라(Caturra)와 다른 품종이 섞여 있었을 일반적인 에스메랄다 커피에서는 미묘한 꽃 향기가 났다. '베스트 오브 파나마(Best of Panama)' 대회를 위해 피터슨 가문은 자신들의 커피 품종을 분리하기로 결정했다. 그래서 이때가 게이샤가 심사위원들 앞에 처음 등장한 때였고, 게이샤의 '데뷔(coming out)' 무대와도 같았다.우리는 피터슨 가족 집의 아주 널찍한 거실에서 이 커핑(cupping)을 진행했는데, 사실 그곳은 진짜 그들의 집이 아니었다. 내 기억으로는 아마 그 집을 매물로 내놓았던 것 같다. 이 지역은 하라미요(Jaramillo)라고 불렸다. 그 집은 (도대체 누구에게?) 깊은 인상을 주기 위해 지어진 것처럼 지나치게 컸고, 피터슨 가문이 땅을 매입할 때 함께 딸려온 건물이었다. 이런 보케테(Boquete)의 대형 저택(McMansion)은 이 지역이 앞으로 어떻게 변해갈지를 예견하는 듯했다. 실제로 이곳의 커피 농장들은 훗날 미국인들을 위한 은퇴 후 주택이나, 자국 통화 가치 하락을 피하려는 콜롬비아인 등의 투자용 부동산으로 쪼개어졌다. 하지만 당시에는 이 엄청나게 크고 기묘할 정도로 텅 빈 저택이 나를 놀라게 했었다.로열(Royal)의 밥 풀머(Bob Fulmer)가 수석 심사위원 같은 역할을 맡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하야시(Hayashi) 씨, 마루야마 켄타로(Kentaro Maruyama), 채드 트리윅(Chad Trewick), 프란시스코 메나(Francisco Mena), 존 디루오코(John DiRuocco), 스투(Stu)라는 사람 등 여러 명이 그 자리에 있었다. 그리고 게이샤 커피는 실제로 자스민 노트와 함께 엄청난 꽃 향기를 뿜어내어 모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고, 그 압도적인 존재감 앞에 다른 모든 커피들은 무색해지고 말았다. 커피 업계 사람들이 숟가락으로 커피를 후루룩 들이마시며 맛을 비교하는 커핑(cupping) 형식에서 게이샤가 "발견"되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커핑 대회는 온통 탑 노트(top-notes)로만 이루어진 에스메랄다 게이샤 같은 커피가 아주 좋은 성적을 거두는 무대다. 꽃 향기와 깔끔한 과일 향, 산미가 탁월함의 척도가 되고 90점 이상의 점수를 가져다주는 곳이다. 또한 커핑 대회는 화려하고 이국적인 풍미 대신 균형 잡히고 절제된 특징을 가진 맛있는 '마시기 좋은 커피(drinking coffees)'들이 85점이나 86점 정도를 받으며 '들러리(wallflowers)' 취급으로 전락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하지만 커핑은 종종 맥락의 문제이며, 이 게이샤 컵의 발견은 유전학적 뿌리인 에티오피아 커피의 맥락에서가 아니라 중남미 워시드 커피들을 배경으로 이루어졌다. 중남미에서 재배된 게이샤를 에티오피아 커피들과 함께 테이블에 올려놓으면 완전히 다른 인상을 준다. 하지만 게이샤는 사실 그런 것들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 커피 그 자체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꽃 향기라는 특징은 그것이 더 중요한 내러티브(여기서 내러티브란 마케팅 자료를 의미한다)를 뒷받침하는 한에서만 중요하다. 이 내러티브는 고급 와인에나 주로 주어지던 감식(connoisseurship)의 경지로 커피도 격상될 수 있다는 기존의 욕망에 뿌리를 두고 있다. 커피가 와인의 수준으로 도약하기 위해 필요한 추진력은 아라비카 품종이 매우 중요하며, 컵의 맛을 통해 그 품종을 해독해 낼 수 있다는 개념이다. 이런 의미에서 게이샤는 스페셜티 커피의 황금 화살이지만, 동시에 엄청난 예외이기도 하다. 일반적으로 커피 품종의 뚜렷한 특징은 최종 컵의 풍미에서 거의 감지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그것은 그저 속삭임에 불과하다. 커피는 와인과 전혀 다르다. 커피 품종은 수확량과 내병성 측면에서 커피를 재배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하다. 경험이 풍부한 커피 바이어들 사이에서 버번(Bourbon)이나 티피카(Typica) 같은 (오래된) 품종에서 높이 평가하는 특징들은 아주 미묘해서 소비 대중과 공유하기가 꽤 어렵다. 사실 그러한 특징들은 커피를 들러리 범주로 밀어내는 것과 동일한 요소들인데, 왜냐하면 그 커피들에는 이질적이고 화려한 "탑 노트"가 없기 때문이다. 이 커피들은 커피에서 신선한 과일과 꽃 맛을 느끼기 위한 것이 아니다. 버번과 티피카 품종은 마시기 좋게 만드는 매력적인 "핵심적인 커피 풍미(core coffee flavors)"를 가지고 있다. 쓴맛과 단맛이 좋은 균형을 이루며, 입안을 개운하게 해주는 적당하고 깔끔한 산미를 지니고 있다. 하지만 2003년(아니, 2002년이었나?)의 나는 이런 방식으로 커피의 "좋음"을 이해할 만한 틀을 전혀 가지고 있지 않았다. 나는 그저 다양한 풍미를 맛보고, 내가 마시고 싶은 것에 자연스럽게 이끌리도록 나 자신을 내버려 두고 싶었을 뿐이다. 당시 로스터들은 "산지"로 그렇게 많이 가지 않았다. 내가 산지를 방문한 것도 고작 2년 차나 3년 차 정도밖에 되지 않았을 때였던 것 같다. 그 여행에서 다니엘(Daniel), 메릴 피터슨(Merrill Peterson)과 함께 농장의 게이샤 구역으로 걸어갔던 일이 기억난다. 그리고 그가 그 구역이 피해를 입었다고(바람 때문이라고 생각했지만, 정확하지 않을 수도 있다) 말했던 것도 기억난다. 그들은 코스타리카에서 구해온 씨앗을 이 피해를 입은 구역에 심었는데, 그것이 알고 보니 게이샤 품종이었던 것이다. 확신하건대, 이 사진 속에서 그들이 나에게 처음으로 게이샤 나무를 보여주고 있는 모습이다. 물론 내 기억이 틀렸을 수도 있다. 2002년(혹은 2003년) 당시 우리는 파나몬테(Panamonte) 호텔에 머물렀다. 뒤쪽에 있는 별장(cottage) 객실 숙박비가 65달러였다. 나는 그 가격이 터무니없이 비싸다고 생각했다. 1964년에 FAO(유엔식량농업기구) 커피 조사단의 과학자들과 식물 육종가들은 매일 밤 이런 식으로 묵었었다. 솔직히 말해서 나는 차라리 그 여정에 함께하고 싶었다. 그들이 지나간 지역들이 지금 엄청나게 개발되었다는 뜻은 아니지만, 적어도 이제 일루바보르(Illubabor)에서 노새를 타고 이동할 필요는 없으니 말이다! 그들의 여정이 지닌 중요성은 당시에도 꽤 분명했지만, 되돌아보면 훨씬 더 큰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에티오피아에서 아라비카 커피를 체계적으로 조사하고 수집할 수 있었던 마지막 기회였다. 특히, 씨앗과 식물 표본, 커피 병원균을 국외로 반출해 국제 연구 시설에서 연구할 수 있도록 허용된 마지막 조사였다. 그 이후로 에티오피아는 식물 자원에 대해 철저히 방어적인 태도를 취하는 것으로 유명해졌으며, 이는 당연한 일이다. 커피 유전자는 국가의 보물이기 때문이다. 커피 씨앗을 몰래 가지고 나가려다가는 체포될 수도 있다. (몇 년 전, 커피 업계에 종사하는 누군가가 정확히 그런 일을 시도하다 구금되었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는 여권을 압수당하고 구금되었으며, 향후 여행에 대한 모종의 벌금이나 제한 조치를 받았다고 한다. 그는 파나마 출신의 커피 농부였다). 최근 나는 1964년과 1965년에 있었던 에티오피아 커피 조사단(Ethiopia Coffee Mission)에 대해 상세히 기술한 유엔 식량농업기구(FAO)의 보고서 사본을 우연히 보게 되었는데, 621개의 수집 샘플 중 게이샤 커피가 포함되어 있었다. 그것은 녹병 및 해충에 대한 내성 품종 개량을 구체적인 목표로 삼고 에티오피아에서 커피 품종을 수집한 첫 번째 사례로, 커피가 하층 식생(understory plant)으로 자라는 가장 중요한 원시림과 전국의 경작지를 아우르는 대규모 여정이었다. 그 씨앗들은 영국의 큐 가든(Kew Gardens)에서 전 세계 여러 커피 연구 기관으로 꽤나 무작위로 분배되었다. 490개의 샘플이 페루와 코스타리카 투리알바(Turrialba)에 위치한, 현재 CATIE라 불리는 연구소로 나뉘어 보내졌다. 그리고 바로 그곳이 라 에스메랄다(La Esmeralda)의 피터슨 가문이 게이샤 씨앗을 얻기 위해 연을 맺었던 곳이다. (참고: 이 부분은 논란의 여지가 있다. 한 페이스북 메모에 따르면 그 씨앗은 그보다 앞선 1936년 수집품에서 유래했으며 탄자니아에서 재배되다 파나마로 보내졌다고 한다. 하지만 FAO 문서는 이전의 과학적 수집 활동을 인용할 때 에티오피아에서 씨앗을 수집하기 위해 문서화된 여정에 대해서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다. 따라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이는 일종의 개인적인 시도였을 것이다. 하단의 커피 조사단 목표 및 추추추추추추신(PPPPPPPS’s)을 참고하라). 그러니 나 자신을 포함해 내가 아는 그 누구도 게이샤의 "발견" 현장에 있지 않았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그 여정에 참가했던 식물학자, 유전학자, 곤충학자들 역시 그 자리에 없었다. 이 샘플을 위해, 그들은 벤치 마지(Bench Maji) 지역에서 심부름꾼(runners)들을 언덕으로 보내 샘플을 수집하도록 했다. 아마도 그들은 너무 많은 이동과 캠프장 설치 및 철거에 지쳐 있었을지도 모른다. 1964년 12월 10일의 E-126 샘플과 함께 구체적인 경도 좌표가 제공되기는 했지만, 그곳이 실제로 커피가 수집된 장소인지는 불분명하다. 심부름꾼이 어떻게 정확한 좌표를 표시할 수 있었겠는가. 그들이 정말로 "게이샤 산의 북동쪽 가장자리"까지 뛰어갔을까? 아니면 그냥 친구 집으로 달려가 뒷마당에서 커피를 좀 따온 것은 아닐까? 그리고 이 샘플이 "무작위 샘플(Random Sample)"로 불린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여기, 박스 표시된 항목을 보면 E-126이 어떻게 수집되었는지 알 수 있다. 이 여정은 프레더릭 G. 마이어(Frederick G. Meyer)가 이끌었고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인도 출신의 참가자들도 함께했다. 하지만 기본적으로는 다분히 영국풍의 탐험대였다. 이는 현지 표지판에 '게이샤(Gesha)'라고 표기되어 있던 산 이름이 초기 여정 기록에서조차 '게이샤(Geisha)'로 둔갑해 버린 기이한 사실을 설명해 줄지도 모른다. 더욱 이상한 것은, 구체성을 따지기 좋아하는 전형적인 영국의 성향이 여기서는 그들의 기호(엉뚱한 상상력)에 굴복해 버렸다는 점이다. 커피가 수집된 곳으로 알려진 확실한 랜드마크인 고레이(Gorei) 마을의 이름을 따서 명명하지 않은 이유는 무엇일까? 바르도(Bardo)나 보르데(Borde), 또는 바르다(Barda)로 기록된 이름들은 왜 안 썼을까? 아마도 별로 매력적이지(sexy) 않다고 생각했나 보다. 현재 현지 도로 표지판(그리고 구글 어스)에 사용되는 철자는 게차(Gecha)이다. (이 글의 제목에 "Geisha" 대신 세 가지 다른 표기를 적어놓은 이유이기도 하다.) 미잔 테페리(Mizan Teferi)와 벤치 마지(Bench Maji)로의 여정은 탐험대원 중 한 명인 L.M. 퍼니(L.M. Fernie)와, 당시 짐마 농업학교(Jimma Agricultural School)에 파견 나와 있던 오클라호마 주립대학교 출신의 미국인 플로이드 볼턴(Floyd Bolton)이 맡았다. 그는 커피 전문가는 아니었지만, 흥미로운 외전(side-story)의 한 축을 담당하는 인물이다. 이 일이 있기 얼마 전, 오클라호마 주립대는 짐마에 위치한 옛 이탈리아 건축 양식의 학교 부지를 다시 여는 작업을 돕고 있었는데, 당시 시설 전체가 방치되고 허물어져 잡초가 무성한 상태였다. 그들은 잡초를 뽑아내고 헛간과 외양간에 교직원들의 숙소를 마련했다. 플로이드 볼턴도 그들 중 한 명이었다. 학교 운영을 시작하기 위해 그들은 문전성시를 이룬 500명의 지원자 중 거의 무작위로 80명의 학생을 4개 학년에 입학시켰다. 학생들의 학업 수준이 어느 정도일지 어림짐작만으로 3학년(Juniors)이나 4학년(Seniors) 등에 배정했지만, 결과적으로 50명 이상을 무사히 졸업시키는 데 성공했다. 그중 16명은 훗날 포스트닥(박사 후 연구원) 수준까지 학업을 이어갔다.벤치 마지에 소규모 활주로가 있긴 했지만, 더 넓은 지역을 돌아보려면 몇 주가 걸릴 수도 있었다. 그들의 일정표를 보면 당시 이 지역에는 제대로 된 도로나 자동차가 없어서 도보나 노새를 타고 이동하는 것이 일반적이었음을 알 수 있다. 커피 씨앗을 수집하기 위해 '심부름꾼(runners)'을 내보낸다는 아이디어는 바로 이런 배경에서 나온 것이다. 하지만 게이샤 산의 고레이(또는 바르도, 바르다, 보르데) 샘플이 수집되었다고 기록된 날짜인 12월 10일경, 그들은 수도 아디스아바바에 편안히 돌아와 있는 상태였다. 3일 동안 도보와 노새로 이동한 여정이 그들을 완전히 녹초로 만들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처음에 E-126으로 분류되었던 이 특정 샘플의 중요성은 수집된 다른 620개의 품종들 사이에서 특별히 눈에 띄지 않았으며, 그저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사후적으로 중요성을 띠게 된 것으로 보인다. 어떤 샘플들은 여러 나무의 열매가 섞여 있거나 "지나가는 길에" 대충 채집된 것처럼 보인 반면, 어떤 샘플들은 커피녹병에 대한 내성, 식물의 건강 및 생산성을 염두에 두고 다분히 의도적으로 찾아내어 기록되었다. 게이샤는 후자에 속하지 않는 듯하며, 이 커피와 그 이름의 유래가 된 지명(애초에 게이샤 산에서 온 것이 맞기나 하다면 말이다) 사이의 모호한 관계조차도 다소 자의적이어 보인다. (무엇보다도 CATIE의 게이샤 재배 구역은 형태가 다른 식물들이 섞여 있는 것으로 보고되는데, 새잎이 어두운 청동색을 띠는 나무들과 밝은 녹색을 띠는 나무들이 섞여서 관찰된다고 한다). 이제 커피 시장에서 게이샤(Gesha)가 '게이샤(Geisha)'로 통용되며 높은 가격에 거래되고 있는 상황에서, 소비국의 영향력은 에티오피아의 시골 마을에 이르기까지 전 세계 커피 생산지에 널리 퍼질 만큼 강력해졌다. 미잔 테페리 근처의 머나먼 서부 지역에 위치한 농장들은 이름에 "게이샤(Geisha)"를 가져다 쓰기 시작했다. 캘리포니아와 에티오피아를 오가며 지내는 한 에티오피아 농부의 경우처럼 말이다. 그는 '게이샤 커피'를 팔았지만, 그것이 '게이샤 품종(Variety) 커피'는 아니었다. (이것은 바이어가 지불하는 가격에 엄청난 영향을 미치는 작지만 중요한 디테일이다. 예전에 나는 코피 루왁(Kopi Luwak)이라는 자바 커피를 제안받은 적이 있었는데, 실제로는 꽤 괜찮은 워시드 가공(wet-process) 커피처럼 보였다. 알고 보니 그 수출업자는 자신들의 최고 등급 커피를 그저 코피 루왁이라고 부르고 있었던 것이다. 비록 실제 루왁보다 컵의 맛은 훨씬 낫고 가공 과정도 혐오스럽지 않았겠지만, 이는 여전히 바이어를 혼란스럽게 하려는 꽤 노골적인 꼼수였다). 그리고 캘리포니아 출신의 전직 사진작가의 구상으로 척박한 땅에서 생겨난 새로운 '게이샤 빌리지 농장(Geisha Village farm)'(게이샤 산 인근에 위치)도 있다. 그들의 커피는 분명 훌륭하겠지만,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충분히 해낼 수 있는 지역에서 미국인들이 커피 농장을 시작하는 것이 과연 어떤 메시지를 전달하게 될지에 대해서는 확신할 수 없다. 우리 서구인들이 그곳에서 커피 농사를 더 잘 지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단지 마케팅이라는 윤을 더 번지르르하게 낼 수 있을 뿐이며, 게이샤(Gesha 또는 Geisha)라는 이름이 남용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참고: 확실히 해두자면, 트립어드바이저에 1,000개가 넘는 리뷰가 달린 일본 기온(Gion)의 게이샤 마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 농장이 생태 관광을 계획하고 있기는 하지만, 내 알기로는 진짜 게이샤들이 여러분을 맞이해주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어느 모로 보나 게이샤 빌리지(Geisha Village)의 사례는 커피 생산자 계층 간의 극명한 차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또 강조한다. '에티오피아의 커피 농부'로서 이 특별한 게이샤 빌리지 농부(즉, 에티오피아에서 커피 농사를 짓는 미국인)의 이례적인 모습은 에티오피아 시골에서는 보기 드문 광경이며, 오히려 식민지 시대의 케냐에서나 볼 법한 모습이다. 하지만 파나마 같은 곳에서는 그리 드문 일이 아니다. 게이샤 커피 현상은 이 커피 씨앗에 접근할 수 있고(이제 중미나 콜롬비아에서는 구하기 어렵지 않다), 더 중요하게는 최고급 시장에 접근하여 경매에서 커피 한 자루에 15,000달러를 받을 수 있는 이들에게 엄청난 가격적 혜택을 안겨주었다. 이와 대조적으로 에티오피아의 많은 농부들은 이러한 기준에서 볼 때 쥐뿔도 가진 것이 없으며, 최신 유행하는 엄청난 커피 품종에 접근할 길도 없고, 그런 커피를 차지하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할 바이어들을 만날 기회도 없다. 물론 그들은 작은 땅이나 근처 숲에서 훌륭한 커피를 재배하고 있으며, 아마도 지역 협동조합에 적당한 가격으로 커피를 팔고 소박한 2차 대금을 받을 것이다. 그 돈이 부디 아이들의 학비를 내기에 충분하기만을 바랄 뿐이다. 소비자들에게는 한 지역의 커피 농부가 문화적인 부분을 제외하면 다른 지역의 농부와 대략 비슷할 것이라고 생각되는 듯하다. 하지만 중남미 일부 지역에서 하듯 직접 거래하기에 에티오피아의 대부분의 농부들은 생산 규모가 턱없이 작다. 하지만 이 모든 지역을 돌아다니며 그 거대한 생활 수준의 차이를 목격하는 사람의 관점에서 볼 때 이러한 현실은 몹시 거슬린다. 나는 상대적으로 호화롭게 살면서 과시적 소비를 행복의 척도로 삼는 커피 농부를 감히 깎아내릴 생각은 없다. 마찬가지로 한없이 더 소박한 기반 위에서 살아가는 에티오피아 농부에게 거들먹거리며 동정심을 보일 생각도 없다. 다만 내가 어느 그룹과 더 뜻을 같이하고 싶은지는 확실히 알고 있다. 게이샤와 같은 커피 상품을 자본화할 수 있었던 것은 교육을 잘 받고 인맥이 두터운 생산자 계층이었다. 하지만 이 게이샤 커피 품종이 애초에 전혀 다른 목적을 가졌던 커피 조사단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1960년 코트디부아르에서 열린 FAO 커피 정상회의에서는 커피 질병과 해충이라는 공동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원시 생식질(germ plasm) 자원의 발원지인 에티오피아로 가자는 아이디어가 제안되었다. 당시 에티오피아에 있는 형태학적으로 다양한 아라비카 커피(coffea arabica) 품종들의 씨앗을 수집하려는 노력은 미비했고, 이전의 일부 수집 시도들은 가장 다양한 커피 숲을 어디서 찾을 수 있는지는 고사하고 에티오피아 내에서 커피가 자라는 위치에 대해서조차 심각하게 잘못된 정보를 가지고 있었다. 커피 조사단은 기회의 창이 닫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에티오피아 숲의 8분의 7이 이미 사라졌고, 남부 및 남서부 지역에만 약간의 원형을 유지한 채 파편적으로 남아 있을 뿐이다." 다음은 FAO의 목표 선언문이다. 조사단의 목적은 커피의 가치를 높이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토착 커피 서식지가 줄어들고, 그와 함께 원래의 종이 어떻게 분포했는지에 대한 이해도 사라져가는 상황 속에서 커피의 미래를 보존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또한 조사단은 내성을 가진 토착 아라비카 품종을 찾길 바라며 커피녹병균(Hemileia vastatrix)의 표본을 관찰하고 수집했다. 비록 직접적인 수혜자는 연구 과학자들과 품종 개량 프로그램이 되겠지만, 이러한 목표는 더 큰 공동의 이익을 향해 있었다. 농장의 높은 생산량을 유지하기 위한 사투 속에서 화학 처리와 비료 비용을 얼마든지 감당할 수 있는 특정 계층의 농부들의 이익을 대변하려는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내성 품종 개발 프로그램은, 농장에서의 값비싼(그리고 끝도 없는) 방제 작업의 필요성을 줄이거나 없애줄 종자를 광범위하게 보급하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었다. 이는 가장 영세한 소농부터 대농장에 이르기까지 모든 농부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일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런 결말을 맺지는 못한 것 같다. 적어도 게이샤의 경우에는 말이다. 우리가 모르는 이 모든 사실들을 고려할 때, 나는 앞으로 "고레이(Gorei)" 커피를 파는 것을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겠다. 이 글의 부록으로 덧붙이자면, 다음은 좌표와 구글의 도움을 받아 찾아낸 "게이샤"의 수집 위치다. 별로 도움이 되지는 않지만 말이다. 그리고 이것은 1968년에 발행된 커피 조사단 보고서에 수록된 지도의 일부이다. 모든 곳에서 철자가 'Geisha'로 표기되어 있었다. 하지만 이 철자는 현지의 'Gesha'를 명백히 영어식으로 변형한 것이다. 이것이 우리가 항상 'Gesha'라는 표기를 사용해 온 이유이다. 나에게 'Geisha'라는 철자는 그럴싸하게 꾸며낸 억지스러운 표기일 뿐이며, 어쨌거나 유튜브에서 찾아본 어느 글램 메탈 밴드의 영상을 떠올리게 한다. 뭐, 당신이 그런 취향이라면 괜찮겠지만 말이다. 자, 여기 (드럼 롤 부탁드립니다) 1964년 FAO 커피 조사단원들의 모습이다. 에티오피아에서 커피 식물 자원을 수집하기 위한 커피 조사단 및 이전의 과학적 조사 여정들의 목표: 추신(PS): "게이샤 산"에서 씨앗을 수집했다는 증거 자료로 위에서 언급된 1936년 편지의 사본을 받았다. 이 수집은 특정 케냐 측의 요청에 따라 무려 벤치 마지(Bench Maji)에 있는 영국 영사에게 이루어진 것이었다(!). 그는 에티오피아 시장(짐마와 아디스아바바)에 퍼진 "게이샤 산" 커피의 명성에 대해, 그리고 상인들이 그 커피를 구하기 위해 먼 거리까지 노새 행렬을 보냈다는 사실을 적었다. 그 씨앗은 덜 익은 청과(green)와 잘 익은 열매가 섞인 상태였으며, 워시드 가공을 거쳐 오직 그늘에서만 건조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숯에 포장되어 케냐로 보내졌다. 편지에는 커피가 자라는 울창한 숲 환경과 고도에 대한 많은 관심이 나타나 있으며, 식민지 시대 영국령 동아프리카의 어느 곳에 심으면 좋을지(그리고 어느 곳에서는 실패할지)에 대한 여러 제안이 담겨 있다. 이것은 과학적 조사 목적이 아니라, 해당 지역의 에티오피아 씨앗을 구하려는 순수한 상업적 요청이었다. 이 씨앗은 현재 Tacri(탄자니아 커피 연구소)의 연구소가 위치한 리아뭉구(Lyamungu)에서 재배되었다고 한다. 편지에 따르면 이 품종의 씨앗이 자라기에는 고도가 다소 낮지만(1,280미터), 그곳에서 번식되었을 가능성은 확실하다. FAO 조사단의 경우에는 씨앗이 확실히 수집되어 케냐의 Tacri와 루이루(Ruiru)뿐만 아니라 Catie와 같은 ICO(국제커피기구) 지원 연구소로 보내졌다. 파나마에서는 1965~1968년이라는 FAO의 씨앗 분배 시기가 파나마에 이 커피가 존재했던 시점과 맞지 않는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하지만 65년 이전에 구체적으로 누가 그것을 가지고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파나마를 제외하면 FAO 시나리오는 들어맞는다. 코스타리카와 과테말라의 게이샤 농장들은 모두 1980년대에 씨앗을 받았기 때문이다(과학적 실험 목적이 아니라 다소 주먹구구식으로 분배된 것으로 보인다). 전 Tacri 직원에게 들은 바로는 말라위(Malawi)에도 또 다른 "게이샤"가 있는데, 사실 하와이를 거쳐 들어왔다고 한다! 추추신(PPS): Gesha 대 Geisha 표기에 대하여: 에티오피아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그들은 현지 언어 중에서 Geisha처럼 "ei" 발음을 사용하는 이름은 전혀 떠올리지 못하는 반면, Gesha의 "esha" 발음은 어디에나 존재한다고 말한다. 하베샤(Habesha)처럼 말이다! 하지만 그들의 말이 틀렸을지도 모른다. 마을의 도로 표지판에는 Gecha라고 적혀 있기 때문이다. "echa" 역시 오로미파(Oromifa)를 제외한 현지 방언들에서 흔하게 쓰인다. 추추추신(PPPS): 이것은 내가 훗날 노년기에 궁극적으로 나의 중요성을 은근히 과시하거나, 아니면 과거에는 얼마나 좋았지만 지금은 더 이상 그렇지 않다는 식의(예를 들어 "20년 전의 수마트라 커피는 오늘날과 전혀 달랐다" 같은) 명백히 거짓된 회상을 전제로 쓰게 될 수많은 글 중 하나일 뿐이다. 누가 아니라고 반박할 수 있겠는가? 추추추추신(PPPPS): 앞선 추추추신(PPPS)은 농담이다. 혹시나 의도를 파악하지 못했을까 봐 덧붙이자면, 이 글은 오피니언(op-ed) 칼럼이다. 그래서 중요성을 가장한 내 개인적인 이야기들로 글의 처음과 끝을 장식한 것이다. 이 글은 내가 작성을 채 끝내기도 전에 "발행"되었던 원본에서 수정, 발전된 것이다. 그 원본에는 사람들이 몰고 다니는 값비싼 자동차들에 대한 엉성한 언급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이 글의 다른 모든 유용한 내용들까지 무시해 버리기에 충분할 만큼 구차했다. -t.o.